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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까지의 순종

Luke 9

Then he said to the crowd, “If any of you wants to be my follower, you must turn from your selfish ways, take up your cross daily, and follow me. If you try to hang on to your life, you will lose it. But if you give up your life for my sake, you will save it. And what do you benefit if you gain the whole world but are yourself lost or destroyed? If anyone is ashamed of me and my message,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that person when he returns in his glory and in the glory of the Father and the holy angels. I tell you the truth, some standing here right now will not die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Luke 9:23-27 NLT)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을 이야기 하는것 같다. 십자가는 사형집행에 쓰이는 도구이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누가 죽으려고 할까? 누가 삶을 포기 하고 싶어 할까? 누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것을 포기하고 싶을까? 그런데, 그것에는 이유와 분명한 동기가 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라는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포기 하는자는 살것이고, 자기 삶에 매달린다면, 그것을 잃어 버린다.

예수님은 끝까지, 죽기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리고, 그 분은 다시 사셨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많은 큰 이유와 의미가 있겠지만, 순종의 본이라는것, 그리고 그 순종으로 그 피흘리심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올수 있었다는 것.

주님, 제가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의 삶을 내려 놓고 주님을 쫓게 하소서. 나 자신이 살고자 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해 그의 나라와 의로 생각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etermination

Ruth 1

6 Then Naomi heard in Moab that the Lord had blessed his people in Judah by giving them good crops again. So Naomi and her daughters-in-law got ready to leave Moab to return to her homeland. 7 With her two daughters-in-law she set out from the place where she had been living, and they took the road that would lead them back to Judah.

8 But on the way, Naomi said to her two daughters-in-law, “Go back to your mothers’ homes. And may the Lord reward you for your kindness to your husbands and to me.

처음에는 나오미는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떠나다가, 중간길에 두 며느리보고 다시 너희 고향으로 가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추측하건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무척 좋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세계적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좋을 확률이 많이 없는 것 같지만, 여기서 그들은 그런 상식을 뛰어 넘어,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냥 그렇게 예의를 차리는 관계가 아닌, 정말 서로 너무나 사이가 좋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같이 떠나는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나오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두 젊은 며느리가 나이든, 그것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시어머니와 같이 베들레헴에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고, 시어머니도 역시 “결심” 하여 두 며느리에게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8절에 가는 도중에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얘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말을 듣고, 오르바와 룻이 둘다 울었고, 오르바는 떠나고, 룻은 남았다.

룻은 왜 남았을까?

예의상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인생을 걸고, 젊음을 걸고,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같이 가기로 “결심”한다. 왜? 무슨 이유로? 이것은 지금은 나도 무엇때문이었을지 추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결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핏줄이 되는 중요한 결정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분명한것은, 룻이 그 어떤 경제적인 이유이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이득을 위해 나오미와 함께 간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옳은 것을 위해 자신의 처지, 미래를 과감히 포기하고, 바른 길이 좁은 길이어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정도로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 맑은 영혼의 소유자.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지 못하고 말이다. 그러나, 진정 마음으로 존경심이 나오고, 그런 사람이라면,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주님, 저의 영혼의 탁함을 용서하옵소서. 저를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깨끗게 하시고, 환경보다, 옳은 것을 선택함에 항상 주저함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거짓 선지자

2 Peter 2:1-3

1. 그들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다.
2. 그들은 똑똑하다.
3. 그러나 파괴적이다.
4. 그들은 그들을 구원 하신 주님을 부인한다.
5.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멸망으로 간다.
( 그러면, 구원 받은 사람도, 구원이 되지 않고, 멸망할수 있는건가? )
6. 많은 사람들이 그 파괴적인 이론을 따른다.
7. 그들에게는 부끄러운 부도덕함이 있다.
8. 그들 때문에, 진리가 홰손된다.

2 Peter 2:12-19

9. 그들은 생각조차 안하는 짐승과 같아서, 이해하기 어려운것은 비웃고 만다.
10. 그들은 짐승과 같이 본능에만 충실하며, 잡히고 죽는다.
11. 파괴는 그들의 보상이다.
12. 대낮에 악한 즐거움을 일삼으며,
13. 그들은 우리의 불명예이며, 흠이다.
14. 그들은 우리의 즐거운 식사시간에도, 속이고 있다.
15. 그들은 눈에 보이는데로 adultery하고, 죄를 향한 욕망이 끊임이 없다.
16. 그들은 (믿음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을 꾀하며,
17. 욕심으로 잘 훈련되어 있다.
18.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
19. 돈버는것에 눈이 먼 발라암과 같다,
20. 아무것도 없는것으로 자랑하고, 어리석은 자랑으로 자랑한다.
21. 성적인 욕망을 이용하여 죄에 빠지게 하고,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22. 자유를 약속하지만, 사실은 죄와 부패의 노예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들을 control 하는 그 누구에든지에 대해 노예이기 때문이다.

선입견

James 2:1-10

크리스챤에게 선입견은 죄이며, 타인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불공정하게 보는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대한 배신이다.

이 선입견의 죄는 내 안에도, 우리안에도, 교회안에도 많이 익숙한 죄 중의 하나다.

야고보서에서는 그 한가지 예로, 교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런 차별을 현대 교회에서 보는것은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다. 교회에 어떤 상당한 부를 가진 사람이나 가정이 오면 어떤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만일 특별히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이라고 판단이 서는 사람이나 가정이 오면, 대부분은 무시한다. 특별히 부자와 별볼일이 없는 두 가정이 같이 있을때, 그 모습은 부끄러울정도로 두드러진다.

그러한 선입견의 태도에 성경은 분명한 경고와 하나님의 분노가 있다라고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은 항상 내편이고, 내 죄는 용서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favor를 받고 있다라고 착각하면서 사는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공평하시기에,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한 타인에게 준 상처에 대해서 그 책임을 반드시 물으시며, 뼈를 깍는 애통과 애절함의 진정의 회개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감히 구할 수 있을까.

유진소 목사님 부흥회 마지막 세째날 정리

계속되는 부흥회의 좋은 말씀에 대하여 오늘은 기대를 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권리를 누리면서, 베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권리를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의무로, 억지로 신앙생활을 끌려다니면서 하는 것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누리면서 당당하게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찾고, 구하고, 두드리면, 열리는 권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좋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좋은 권리를 세상의 것을 구하는데 쓰지 말고, 성령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데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부흥회 3일을 참석하면서,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어떤것인지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흥회를 통해, 저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올해 처음 2014년 resolution으로 만들었던 그 resolution에 대해서 다시 두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첫째날의 fire fighter 와 같이 죄를 향해 싸우는 자세에 대해서 얘기할때, 둘째날의 기도로 죄를 이길 것을 간구해야 한다고 말씀할때, 저는 제 resolution의 첫번째, 죄를 하나도 짓지 않기라는 resolution이 생각이 났습니다. 2014년 첫달이 지나가면서, 돌아볼때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다는 resolution은 내 노력과 내 의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절망속에서, 하나님께 구하는 단 한가지는 성령께서 오시기를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날의 저녁과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는, 두번째 resolution인 사랑을 하자는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저는 많이 서툰 사람인데, 올해 계획속에 두면서도, 사실 그렇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identity와 권리로 사랑할 수 있는, 베풀수 있는 것에 대해서 더욱 기도로, 찾고, 구하고, 두드릴때에, 성령으로 사랑을 채워 주실것을 기도해 봅니다. 이러한 것들을 항상 게으르지 않게 해야 하는데, 어제 말씀에서 들은데로, 경건의 연습이 저에게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말씀을 들으면서, 항상 내려지는 결론은 거의 비슷합니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기본은 말씀을 항상 보고, 기도를 항상 하는 것이겠지요. 기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본을 지키는 것이 참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내 자신을 차근 차근 살펴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