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리고 목사님들

 

목사들의 참회록인가?

교회들에게 따끔하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말하는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초대 교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교회 주교로 알려져 있고, 심지어 바울을 지도하고, 바울은 야고보를  매우 존경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15:3-8, 야고보는 누구인가? ) 그는 야고보서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야고보서 1:27 ) 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도 행동하는 분이셨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매우 중요시 여기던, 사회 지도자층이자, 기득권자들의 부정과 위선적인 모습을 강하게 비난하고 비판하고, 오직 그는 바리새인들 혹은 사두개파들의 질시와 멸시의 대상인 세리, 창녀,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복음 전파하셨다.

그것을 알고 계신 목사님들이, 그것도 현 시대에서 많은 부분에 있어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하는 분들이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고, 부정과 위선적인 정치인들에 맞서서 당당하게 옳은 얘기를 용기있게 하지 못하는 분이라는 사실은 상당한 실망감을 준다.

그들의 말은 정말 청산유수와 같이 아름답고, 그 말씀가운데에 은혜를 많이 받는다. 은혜 받는 사람에게 더 큰 은혜가 있을 지어다. ( 아멘 )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은 입술로만 아름다운 말만 할 뿐, 본인들이 행동하는데에는 무척이나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은혜로운 말씀들이 힘을 잃게 되는 것 같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직접 비난하시고 비판하신 그 말만 번지르르한 바리새인과 동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월호를 설교에 언급하는 것이 이제는 정치적으로, 교회내의 보수파 장로나 보수층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고, 많은 목사들이 그것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금식보다 교회의 분열이나 교회 어른들에게 밉상을 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과연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옳을까?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 아모스 5:7-24 )

세월호의 참사와 그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내가 무언가 많이 할 수 없는 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미국에서, 직장속에 파묻혀, 매일 매일을 생계에 허덕이는 게으름으로, 나는 세월호에 관련되어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시간 하나 내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인가 라는 질문에, 나 자신도 사실은 너무나 부끄럽다.

행동하자. 그리고, 실천하자. 그리고, 두려워 말자.

오해와 진실

1. 광고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흔한 오해와 그 뒤에 숨겨진 진실.

2. 다음은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이야기 하나.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동료 세 명이 한 집에서 살았는데,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를 두었읍니다.
가정부는 청소와 요리를 해주었고, 그녀가 해주는 일은 마음에 쏙 들었다. 한 가지만 빼고…

그 동료들은 집에 있는 술병의술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걸 눈치 채고는 가정부가 몰래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남은 술이 얼마나 되는지를 술병에다 표시를 해서 술이 줄어드는지를 확인했는데 분명히 술은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에 그들은 골프 모임을 마치고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자기 전에 한잔 더 할 생각을 하다가 술병에서 술이 자꾸 줄어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취기가 좀 돈 상태라 그들은 가정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술이 남은 병 안에 오줌을 눠서 채워 넣었다. 그걸 선반 위에 도로 갖다 놓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았다. 며칠이 지났는데 술병 속의 술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들은 가정부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정부에게 자기들 술을 마셨냐고 물으니까, 가정부가 대답했다.

“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음식 만들 때 썼는데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풀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편견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나쁜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오고 말 것입니다.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주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서로 믿고 편하게 터놓고 진실하게 대화하면 아주 쉬운 일들을 우리는 어렵게 살고 있는건 아닌지….

3. 직접 대화해 보지 않고는, 직접 앞뒤전후 사정 모두 들어 보지 않고는, 우리는 쉽게 오해하고,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하나의 모습은 그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4.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야고보서 1:19-27 )

2015 Resolution

2014년 resolution은 다음과 같았다.

  • 하나님앞에서 죄 하나도 짓지 않기. (Do not commit any sin against God)
  • 사랑의 기술을 연마하자. (Improve and learn Love)
  • 게으르지 말자. (Move away procrastination)

죄를 짓지 않겠다는 Resolution을 작성할때부터 이것은 불가능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는데, 역시나 믿음데로 되었다. :) 그것을 소망했던 것은, 성령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셔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데 있었으나, 성령님이 나를 완전히 소화하도록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음에 의하여 성령님이 나를 이끄시지 못하셨고, 나는 어김없이 옛모습으로 죄를 짓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사랑의 기술을 연마하려는 resolution 역시 실패인 듯 싶다. 사랑은 커녕,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만 한 다발씩 선물한 것 같다. 물론, 이유 없이 상처를 주지는 않았겠고, 나 역시 상처를 받은 것이 있기에, 상처를 주게 되는 악순환이 있었던 것 같다. 성숙하지 못한 인격으로 성숙을 배워야 할 사람이, 성숙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간 낭비만 있었던 것 같다. 유기성 목사님께서 FB에 share 하셨던 말씀이 한가지 생각이 난다.

사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야구 못하는 야구선수 보셨습니까? 
농구 못하는 농구선수 보셨습니까? 
운전 못하는 운전기사를 보셨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조합입니다.

만약 자신에게 아직 사랑이 없다고 느껴지면 야구 못하는 야구선수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의 애통함과 갈급함이 성령의 근심입니다.

어느 해 신년축복기도를 하는데 중 1학년 여자아이가 기도제목을 쓰기를 “세상을 너무 사랑합니다. 주님만 사랑하게 해주세요” 라고 썼습니다. 순간 중학교 1학년 여자 아이가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며, 그 아이가 사랑하는 세상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로 하여금 그런 애통함을 느끼게 한 분이 성령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람 만이 마음에 임하신 그리스도, 곧 능력 주시는 자를 통하여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거절하면 죽을 것 같은 초대가 딱 하나 있습니다. 
오직 사랑만 하며 사는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이 초대장은 봉투에 담겨 오지 않습니다. 성경을 펼쳐 한 절 한 절 읽기 시작할 때, 무릅 꿇고 기도를 시작할 때, 잠잠히 주님을 바라볼 때,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유한 삶으로의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라는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지금 당장 살 수 있는데 말입니다.

 

게으르지 말자라는 추상적이고도 무척 추상적인 resolution이 또 있을까? 알면서도, 나는 그 내포하는 나만의 의미가 있었기에 추상적이었지만, 2014 resolution에 넣어 두었었다. 그러나, 항상 선배들이 얘기해 주셨던, 구체적인 resolution이 아니기에 measure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2015 Resolution

2015년 Resolution은 다시 정통의 방법인 구체적으로 쓰기로 한다.

  1. Reading
  2. Programming
  3. Faith
  4. Family
  5. Home Finance
  6. Friendship

(각 내용은 깊이 있게 썼으나, Private 한 내용이 너무 많아 Blog 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따로 Secure 한 장소에 저장을 해 두고, 내년 말즈음에 Measure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구체적으로 쓰기는 했으나, 과연 이 모든 것이 2015년에 가능할 것인가는 사실 모르겠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보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 할찌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심 (잠언 16:9)을 믿으며, 편한 마음으로, 그러나 최선으로 살자.

최선이라는 말을 생각하니, 얼마전에 끝난 드라마 미생에서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사회는 결과로 책임을 지지, 최선이라는 것은 학생때나 어울리는 말이다.” 라는 식의 대사였다. 동의 하는 대사이며, 맞는 말이다. 그러나, 최선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고, 결과는 내가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결과와 열매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저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외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결과를 예측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전제는 깔고 있어야 겠지.

모든것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절대 신뢰하면서, 내가 해야 할 부분은 실천하면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2015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