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23일째: How We Grow

며칠을 조금 쉬었습니다. 몸도 조금 아팠고, 조금 책을 읽는데 게을렀던 듯 싶습니다.

마침 책을 읽는데, 오늘의 주제는 Growing 이네요. 그리고 Growing을 설명하면서, 실천하는 결단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장으로 가는 첫 발걸음은 “결심” 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성장하겠다고, 본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신의 결심이 없이는 무언가 하기란 참 힘이 들겠지요.

영적 성장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일이고, 어떤 것이 나의 일인지 명확하게 Define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렴풋이 이런것이 하나님께서 하시고, 이런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책에서 설명할 것이라고 하기때문에 우선은 그런 역할이 있다는 것만 알고 넘어 가기로 합니다.

또하나 영적 성장에 중요한 것은 “생각”입니다. 모든 행동은 “믿음”으로 동기유발이 되며, 모든 행동은 “가치/태도(Attitude)”로 인해 행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크리스챤의 성숙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은 “남”을 “나”보다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그렇게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혹은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어가고, 교회에 오래다니고, 혹은 사역이나 직분을 맡아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남”을 “나”보다 먼저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이신 그 모범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들이 많이 있는 듯 싶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구요. 그러나 주변에 보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멋진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로는 그 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더 임하였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되기도 하는군요. 실제로도 그럴것이,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복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인 듯 싶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22일째: Created to Become Like Christ

큰 주제를 놓고 보았을때, 오늘부터 28일째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에 촛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천지를 창조하실때 인간을 가장 하나님과 비슷한 이미지로 만드셨는데, 그 이미지에 예수 그리스도가 투영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예수님 만이 이 세상에 눈으로 볼 수 있는 인간중에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는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질 수는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것이 왜곡되고 변형되고 일그러져 있고 그래서 결국 죄가 낳은 파괴와 분열과 싸움과 적대감이 만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읽은 부분 중에 이 말이 다가 오네요.

“Why is this happening to me? Why am I having such a difficult time?” One answer is that life is supposed to be difficult! It’s what enables us to grow. Remember, earth is not heaven

크리스챤에게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고통과 힘겨움들. 그 질문속에서 왜 하나님 이라는 질문을 종종 할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질문 많이 했습니다. 물론 평소에는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고통에 대해서 잘 이해도 합니다. 대학생때 보았던 C.S. Lewis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Shadowland라는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멋진 대사중의 하나는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라는 대사였습니다. 동감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정작 C.S.Lewis의 연인이 암으로 죽어가자 그 역시 외치는 비명은 “왜 하나님?” 이었습니다. “성숙”이라는 것을 잘 알기는 하지만, 고통이 올때 그 질문을 시작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열어가기 시작하는 시발점이 아닌가 싶네요.

갑자기 빌게이츠가 고등학교에서 한 연설중에 한 대화가 떠오르네요. “Life is not fair – get used to it.” 🙂

그러나 정말 확실한 것은 그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나면, “정말로” “성숙” 해지는 내 모습을 본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곤 또 놀래기도 하고, 아직도 옛모습을 버리지 못한 모습도 같이 공존하는 그런 것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오늘 짚고 넘어갈 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우시지만, 그 약함을 도우신다는 의미가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선택하는 것을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우리가 하는 것에 어떻게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인가를 도우신다는 얘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 직업을 가질까요, 말까요, 를 고민하는 것에 성령께서 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무슨 직업을 갖던지, 그 직업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도우신다는 말씀인 듯 싶습니다.

날마다 그런 즐거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겸손하게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또 하루를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21일째: Protecting Your Church

Unity와 Uniformity의 다름을 강조하면서 오늘의 주제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알아두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약간 혼동이 오고 있습니다. 지난번까지는 정직을 위해서 분명한 태도를 보이라고 하더니, 오늘은 공동체를 위해 본인의 희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두가지의 Balance 를 맞추는게 쉽지는 않은일 같습니다. 좀 더 책을 읽으면서 고민해 봐야겠네요.

목적이 이끄는 삶: 20일째: Restoring Broken Fellowship

오늘의 주된 주제는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느냐 입니다.

평화는 미스코리아나 미스 유니버시티에 출연하시는 분들만 원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Peacemaker가 되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Peace는 누구나 사랑하지만, Peacemaker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땀과 노력과 불편한 관계를 극복해야 하고, 솔직한 얘기와 함께 관계를 깨지 않아야 하는 멋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집중하다보면, 조금 격한 표현과 말이 나올 수도 있고, 해결이 되어서 서로 좋은 관계가 형성되기 보다는 그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마냥 숨기거나 계속 미루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즉시 행동하되, 우선 오늘 Chapter에서 Recommend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과 부드러운 말로 문제에 대한 제기를 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이 나에게 촛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이 될 것에 대해서 촛점을 두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며, 어물쩡 거려서도 안됩니다.

아, 정말 어렵습니다. 두가지가 상충되는 것 같습니다. 평화와 문제 해결은 공동체에서 정말 필요합니다. 다시 어제 Speech of Freedom과 Bad Words의 토론이 생각이 납니다. 결론은 Speach of Freedom입니다. 결론은 문제에 대한 문제제시와 해결책이 공동체에 필요할때 반드시 이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행에 있어, 절대적인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하는 것이 필수 있듯 싶구요.

목적이 이끄는 삶: 19일째: Cultivating Community

미국 초등학교에서 흔히 있는 토론 주제중의 하나는 “Freedom of Speech” 와 “Bad Words”의 경중 (Weight)를 따지는 토론이 있다고 합니다. 두가지는 상호 충돌할때가 있는데, 그래도 어떤 것이 더 소중한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답은 “Freedom of Speech” 입니다.

오늘 공동체를 Cultivating 하기 위해 필요한 몇가지 요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즘 Community에 관련된 이야기중에서 역시 반복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Honesty 입니다. 만일 공동체에서 어긋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사랑”과 “겸손”을 가지고 그 형제/자매에게 다가가서 솔직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사랑”과 “겸손”을 가지고 얘기한다 하더라도, 그 형제/자매가 싫어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현대의 교회에 또하나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렇지요. 상대가 나를 싫어 할 수 있고, 관계가 깨질 것이 두려워서, “False sense of Peace”에 대한 미신으로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또한 무척 싫어하시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무례하게 얘기하거나 정죄하는 투로 얘기하는 것은 옳지는 않겠지요. 성경은 적당한 때와 적당한 방법이 항상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때에 용기를 내어 솔직한 고백과 솔직한 이야기들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그 공동체를 더 가깝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외에 오늘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요소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겸손, 예의바름, 비밀유지, 빈도 등이 있습니다. 비밀유지는 공동체에서 있는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다거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서 얘기한 것을 다른 어디서도 얘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Gossip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은 Gossip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이상적인 공동체는, 신실성 (Authenticity), 상호성 (Mutuality), Sympathy, Mercy, Honesty, Humility, Courtesy, Confidentiality, 그리고 Frequency 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간에 한글로 번역하기가 제 실력으로는 부족해서 그냥 원문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