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시편 57편을 쓸 당시는…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중에 다윗에 대한 예화를 들으면서 또한 은혜를 받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골리앗을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무엘상 17:45)” 라고 하면서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쳤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사울왕의 시기를 받아 사울왕이 죽이려고 다윗을 해하려고 합니다. 아내도 빼앗기고, 도망가서 도움을 받은 제사장이 사울왕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자, 아무도 다윗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하다하다 못해, 적국인 블레셋, 골리앗을 죽인 그 블레셋으로 도망을 갑니다.

도망간 블레셋에서도 다윗을 알아보고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미친척을 합니다. 침을 질질 흘리고 벽을 긁고 해서, 블레셋 사람이 내쫓아서, 그래서 겨우 목숨을 건져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갑니다. 짐승들만 있는 광야로 쫓겨가, 굴에 숨어, 거기서 다윗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편 57편을 썼다 합니다.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어떻게 다윗은 그런 상황속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 조국도 버리고, 다 빼앗기고, 심지어는 미친척을 하여 적국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나온 그 신세에, 그는 어떻게 이런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믿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결코 세상의 성공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며, 반대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십자가는 결코 세상입장에서는 성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사람들은 내려와보라고 하면서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존심이나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알량한 사탄의 공략속에서 그는 묵묵히 하나님께 순종만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후에도 모든 제자들과 사도들은 순교를 각오하였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순교하셨습니다. 세상의 성공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릅니다.

예전에는 마음 한켠에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너무 잘 믿으면, 교회에 너무 빠지면 그렇게 고생하는거 아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아닙니다. 고생이나 고난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며, 그 분을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환경은 저에게 어떤 흔들림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한분이면 정말 “충분”합니다. 그 분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하나님에 대해서 분석하고, 어떤 현상이나 Event가 발생하였을때, 궁금해하고, Understanding을 먼저하려고 하고,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일까,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앞서는 마음이 보통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때 바라보는 한가지 관점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의 뜻을 이미 알고, 그것에 실천하면서, 죽기까지 순종하면서 십자가의 길까지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시 전자인 듯 싶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더 깊게 묵상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게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기 보다, 이성이 먼저 앞서고, 분석하고, Understanding을 하려는 마음이 더 앞서는 모양입니다.

나의 죄와 나의 허물을 먼저 보고 하나님께서 행하여 보여주신 수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기보다는 이성적인 Understanding에 의해 모든것이 좌지우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나에게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 내 명철을 의지 하지 않고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거시적인 계획과 내가 보는 미래의 두려움

QT Word: Genesis 32:3-13

3 Then Jacob sent messengers before him to Esau his brother in the land of Seir, the country of Edom. 4 And he commanded them, saying, “Speak thus to my lord Esau, ‘Thus your servant Jacob says: “I have dwelt with Laban and stayed there until now. 5 I have oxen, donkeys, flocks, and male and female servants; and I have sent to tell my lord, that I may find favor in your sight.”’”
6 Then the messengers returned to Jacob, saying, “We came to your brother Esau, and he also is coming to meet you, and four hundred men are with him.” 7 So Jacob was greatly afraid and distressed; and he divided the people that were with him, and the flocks and herds and camels, into two companies. 8 And he said, “If Esau comes to the one company and attacks it, then the other company which is left will escape.”
9 Then Jacob said, “O God of my father Abraham and God of my father Isaac, the LORD who said to me, ‘Return to your country and to your family, and I will deal well with you’: 10 I am not worthy of the least of all the mercies and of all the truth which You have shown Your servant; for I crossed over this Jordan with my staff, and now I have become two companies. 11 Deliver me, I pray, from the hand of my brother, from the hand of Esau; for I fear him, lest he come and attack me and the mother with the children. 12 For You said, ‘I will surely treat you well, and make your descendants as the sand of the sea, which cannot be numbered for multitude.’”
13 So he lodged there that same night, and took what came to his hand as a present for Esau his brother: (Genesis 32:3-13, New King James Version)

QT Bread: God’s Mercies

What I am thinking:

야곱은 나와 비슷하다. 그는 현재 미래를 모르고 있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모르고 두려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현재 두려운 상황에서 어떤 보이는 한두가지의 사실에 겁을 먹고 있다.

나 역시 현재 미래를 모르고 있으며, 어떤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나는 결코 알수 없다. 그리고, 현실에 있어서 다가오는 미래에 너무 많은 염려와 걱정을 하는 모습이 있다. 그리고, 다가오는 어떤 보이는 현실에서 두려워 하는 모습이 야곱과 비슷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기도하는 모습도 비슷한 것 같다. 두려운 미래, 걱정스럽게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서 다가오는 결과의 책임을 져야 하는 현재의 모습속에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한순간 한순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거시적인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내가 있음을 희미하게 느끼면서도 눈에 보이는 현실이 더 크게 느껴지는 두려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그 뒷받침에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싸움속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그날 그날을 살아 갈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다.

What I want to apply today:

– 성실하게 오늘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게으르지 않게 살자.

Pray

주여, 저의 죄를 용서하옵시고, 과거의 죄가 있어 혹시 부딛힐 수 있는 현재의 고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런 고민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님께 엎드려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더욱 주님께로 나아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의 삶속에서도 성실하게 살게 하옵시고, 잘 계획하여 죄를 짓지 않고, 부지런하게 주님께서 주신 시간들을 채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마음, 99마리 양의 마음, 잃어버린 양의 마음

QT Word: Luke 15:1-7

1 Then all the tax collectors and the sinners drew near to Him to hear Him. 2 And the Pharisees and scribes complained, saying, “This Man receives sinners and eats with them.” 3 So He spoke this parable to them, saying:
4 “What man of you, having a hundred sheep, if he loses one of them, does not leave the ninety-nine in the wilderness, and go after the one which is lost until he finds it? 5 And when he has found it, he lays it on his shoulders, rejoicing. 6 And when he comes home, he calls together his friends and neighbors, saying to them, ‘Rejoice with me, for I have found my sheep which was lost!’ 7 I say to you that likewise there will be mor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nine just persons who need no repentance. (Luke 15:1-7, New King James Version)

QT Bread: To The Rescue

What I am thinking:

예수님이 설명하신 이 비유를 보는 세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99마리의 양의 입장과 회개하여 돌아온 1마리의 양의 입장,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이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왜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가 하는 불평에 대한 깨우침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이 비유는 하나님의 입장을 얘기하고자 함인 듯 싶다.

하나님의 마음이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때의 그 기쁜 마음이 얼마나 큰지 잃어버린 양을 찾은 그 기쁨에 견주어 비유하고 있다.

만일 99마리의 양의 입장에 있다면, 아마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상으로 회개할 필요가 없는 양이라는 것은 없으나, 비유상 등장한 이 99마리의 양은 어쩌면 기존 신자, 혹은 그동안 문제없이 신앙생활을 한 사람정도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은 사람을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99마리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잃어버린 양을 동경할 수도 있는 마음이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인이 관심을 크게 가져주고 크게 기뻐하니 잃어버린 양이 한번쯤 되고 싶은 충동까지도 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다. 잃어버린 양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양의 입장은 어떨까? 아마 길을 잃고 헤매어서 불안에 떨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인집을 떠나서 여기저기 방황하는 시간낭비로 제대로 음식도 못먹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늑대에게 잡혀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외로움과 걱정으로 떨면서 있었을 것이다. 그 양은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어떻게든 주인의 집으로 가려고 했고, 다행이 주인이 발견하여 돌아오는 기쁨을 얻게 된 것이다.

99마리의 입장에서는 돌아온 그날의 기쁨을 어쩌면 질투와 시기로 부러워 할 수 있겠지만, 잃어버린 양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입장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고, 잃어버린 양이 온 그 날의 주인의 기쁨에 함께 동참할 수 있으리라. 아울러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잃어버린 양을 찾은 그 기쁨이 큰지에 대해서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유가 대부분은 어쩌면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전도를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얘기이다. 잃어버린 양을 찾을 수 있도록 항상 마음을 오픈하고 사람들과 접촉하며 하나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통로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양을 데려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무언가 해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끌고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주인께서 찾으시는 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잃어버린 양이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그런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What I want to apply today:

  1. 시기와 질투, 이런 마음을 갖지 않은 적용은 무엇이 있을까? 이 마음은 곧 내가 99마리의 양에 속하여 있다는 얘기 이겠지. 그러나 이 마음이 필요하다.

Pray

주여, 99마리의 양도 사실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 잃어버린 양의 하나님과 떨어진 죄인보다는, 주인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항상 함으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을 찾은 그 날의 기쁨에 내가 질투하지 않게 하시고, 그 기쁨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마음을 항상 준비시켜 주옵오서.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성령께서 약한 나를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찬양

QT Word: Psalm 19:1-7

1 The heavens declare the glory of God;
And the firmament shows His handiwork.
2 Day unto day utters speech,
And night unto night reveals knowledge.
3 There is no speech nor language
Where their voice is not heard.
4 Their line has gone out through all the earth,
And their words to the end of the world.

In them He has set a tabernacle for the sun,
5 Which is like a bridegroom coming out of his chamber,
And rejoices like a strong man to run its race.
6 Its rising is from one end of heaven,
And its circuit to the other end;
And there is nothing hidden from its heat.

7 The law of the LORD is perfect, converting the soul;
The testimony of the LORD is sure, making wise the simple; (Psalm 19:1-7, New King James Version)

QT Bread: Ordinances Of Heaven

What I’ve observed:

첫 문장에 천국들 (The heavens) 라고 되어있는 것을 볼때, 천국이 여러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시적인 표현이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신학적으로 어떻게 천국(Heaven)을 해석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천국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늘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나타내며, 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이 오늘 시편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법은 완벽하여 영혼을 변화시키고 주님의 간증은 확실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현명하게 한다.

What I am thinking:

시편기자의 그 기쁜 마음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느낄수 있다. 얼마나 하나님을 보면서 기뻤을까,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의 유대감이 깊었을까. 최근의 나의 모습도 그러한가. 최근에 죄악된 세상의 것을 끊으려 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께로 가려고 하며, 게으르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모습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약속과 그 분이 이끄시는 나의 삶에 대해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에 잡이 하나 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 분은 정말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영혼을 변화시키시며, 어리석은 자를 현명하게 바꾸시는 분이시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나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따르고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이다.

What I want to apply today:

  • 오늘도 게으르지 않고 내가 해야 할일 (Understanding the Linux Kernel, 2장 마무리, 3장 읽기)을 하자.

Pray

주여, 감사합니다. 당신이 행하신 일과 당신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축복하신 그 은혜 그대로 우리에게 베푸심을 감사합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할일을 게으르거나 나태하게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