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개혁

오늘의 QT는 열왕기하 18:1-12절이다.

유다왕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일들을 하였다. 여러 우상들을 제하였고, 모세의 놋뱀에 절을 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없애기 위해 그 놋뱀을 부수었다.

모세의 놋뱀을 부수었다는 장면이 오늘은 나의 눈을 사로 잡았다. 이것은 마치, 현대시대에 십자가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만일에 사람들이 십자가에 놓고 분향하고 기도하였다면, 그 십자가를 부셨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모세의 놋뱀이 우상이 되는 것 처럼, 십자가나 성경책이 우상화가 되는 우를 범할수도 있다.

예전에 어떤 선교사가 성경책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말씀을 전하면서, 무슬림들이 코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도 성경책을 소중하게 모셔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때도, 그 말이 가질수 있는 우상화에 대해서 나는 염려를 했었다. 그 선교사는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성경책으로 성경을 읽기를 강조했는데, 그것은 신앙의 본질을 벗어났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설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히스기야는 모세의 놋뱀도 부셨듯이, 우리가 보이는 십자가나 성경책을 하나님보다 우선시 하고 있다면, 그것을 부술수도 있어야 한다. 신앙의 본질에 더 다가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 모든것을 드린다는 것

Mark 10:17-22 (마가복음 10:17-22)에 보면, 부자 청년이 나온다.

이 청년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을 했고,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러나, 그는 뭔가 잘못 알은 것이 있다.

첫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한 것인데, 18절에 예수님이 “선”한 분은 하나님외에는 없다고 고쳐주신다.

둘째는 율법위에 있는 믿음과 사랑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21절에 보면, 예수님은 정말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쫓아라”라는 것을 얘기해 주었다. 나는 여기에 예수님이 그를 바라보는 그 사랑의 눈빛에 오늘 촛점이 맞추어졌다.

예수님은 부자에 대해서 판단 (Judge) 하거나 비난하는 눈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무언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재산을 팔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더 겸손해 지는 것이 더 높아지는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라고 한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억지로, 또는 재산의 일부라도 예수님이 받으려고 하는 것도 없었다.

예수님은 진정한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진실로 그에게 다가가 얘기하셨다.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네 보물이 하늘에 쌓일 것이다. 그리고 나를 쫓으라.”

만일 재산을 팔라는 얘기만 들었으면, 이것은 뭔가 억지가 되거나 마음이 뭔가 석연치 않은 그런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 예수님의 “사랑”을 100% 의지하고 신뢰했다면, 그는 그 말을 따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 나에게도 적용이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정말 행복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님 한분이라면… 그래서 행복하다. 그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오늘의 현실의 괴로움과 왜곡된 삶 속에서 하루하루의 영적 전쟁에 승리할 수 있으리라.

Determination

Ruth 1

6 Then Naomi heard in Moab that the Lord had blessed his people in Judah by giving them good crops again. So Naomi and her daughters-in-law got ready to leave Moab to return to her homeland. 7 With her two daughters-in-law she set out from the place where she had been living, and they took the road that would lead them back to Judah.

8 But on the way, Naomi said to her two daughters-in-law, “Go back to your mothers’ homes. And may the Lord reward you for your kindness to your husbands and to me.

처음에는 나오미는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떠나다가, 중간길에 두 며느리보고 다시 너희 고향으로 가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추측하건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무척 좋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세계적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좋을 확률이 많이 없는 것 같지만, 여기서 그들은 그런 상식을 뛰어 넘어,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냥 그렇게 예의를 차리는 관계가 아닌, 정말 서로 너무나 사이가 좋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같이 떠나는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나오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두 젊은 며느리가 나이든, 그것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시어머니와 같이 베들레헴에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고, 시어머니도 역시 “결심” 하여 두 며느리에게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8절에 가는 도중에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얘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말을 듣고, 오르바와 룻이 둘다 울었고, 오르바는 떠나고, 룻은 남았다.

룻은 왜 남았을까?

예의상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인생을 걸고, 젊음을 걸고,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같이 가기로 “결심”한다. 왜? 무슨 이유로? 이것은 지금은 나도 무엇때문이었을지 추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결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핏줄이 되는 중요한 결정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분명한것은, 룻이 그 어떤 경제적인 이유이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이득을 위해 나오미와 함께 간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옳은 것을 위해 자신의 처지, 미래를 과감히 포기하고, 바른 길이 좁은 길이어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정도로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 맑은 영혼의 소유자.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지 못하고 말이다. 그러나, 진정 마음으로 존경심이 나오고, 그런 사람이라면,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주님, 저의 영혼의 탁함을 용서하옵소서. 저를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깨끗게 하시고, 환경보다, 옳은 것을 선택함에 항상 주저함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QT 중의 노트 (고린도후서 5:1-10)

2 Corinthians 5:1-10 (고린도후서 5:1-10)

먼저 내가 확신해야 하는 것은, 내 안에 정말 성령님이 계신것인가 확인하는 것이다.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지난주에도 새벽예배때 기도했다. 성령님을 주시라고, 혹은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그리고나서,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데, 성은이가 건강하고, 다은이와 와이프를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성령님이 마음을 터치하신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내가 성령님을 너무나 그동안 근심시킨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생각하는데, 감사만 한것이다. 성은이가 건강한것이 그냥 너무 감사해서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것 같다. 그리고, 이 커다란 죄인이 무엇이길래, 산호세까지 와서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하신것 뿐아니라, 여러가지 물질적, 경제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계신 것일까 생각하는데, 기도중에 눈물이 쏟아지는것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심판때에 각 사람에 대해서 선한일과 악한일에 대해서 하나님 보좌 앞에 선다고 한다. 성령을 주시는것은 하나님이시며, 내가 그 증거 찾는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을 이유는 없을 듯 하다. 내가 해야 할일은 믿음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할 칭찬 받을 만한 선한일에 집중하여 내 인생에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보좌 앞에서 심판대에 섰을때, 하나님이 평가 하시겠지. 그 분은 정직하시고, 명확하시며, 모든것을 알고 계시기에, 그 분이 하시는 칭찬의 말을 듣고 싶다.

칭찬의 말을 듣고 싶어 선한 행동을 한다….이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 칭찬받기 위해 선한일을 한다면, 그 선한일이 과연 정말 선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예전에는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생각은 사탄이 나에게 선한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는것을 발견했다. 지난주 새벽예배때의 장성우 목사님이 선택하신 본문인 마태복음 25:14-30에 보면, 한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하는 변명을 보면, 주인에 대해서 자신의 잣대대로 평가하고 결론지으면서, 자신은 정작 아무일도 하고 있지 않다가, 나중에 주인에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 있다. 악하고 게으른 것은 그점이다. 주인에 대해서 자신이 평가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을 하지만, 실제 결과는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인것이다. 그 삶을 하나님은 좋아하시지 않으시며 칭찬하시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는 세가지 뿌리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나의 생각, 하나는 사탄이 주는 생각, 하나는 하나님이 주는 생각이 있다. 내 마음에 들은 생각이라고 다 나의 생각은 아니다. 사탄이 가롯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다고 했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생각인줄 알고 그렇게 행했다.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해야 한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 혼과 영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되어 있다.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에서…)

하나님 앞에서 선한일을 자신있게 해야 할 것이다.

Joshua 1:1-9: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의 성공

QT Word: Joshua 1:1-9

1 After the death of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it came to pass that the LORD spoke to Joshua the son of Nun, Moses’ assistant, saying: 2 “Moses My servant is dead. Now therefore, arise, go over this Jordan, you and all this people, to the land which I am giving to them—the children of Israel. 3 Every place that the sole of your foot will tread upon I have given you, as I said to Moses. 4 From the wilderness and this Lebanon as far as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all the land of the Hittites, and to the Great Sea toward the going down of the sun, shall be your territory. 5 No man shall be able to stand before you all the days of your life; as I was with Moses, so I will be with you. I will not leave you nor forsake you. 6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for to this people you shall divide as an inheritance the land which I swore to their fathers to give them. 7 Only be strong and very courageous, that you may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e law which Moses My servant commanded you; do not turn from it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that you may prosper wherever you go. 8 This Book of the Law shall not depart from your mouth, but you shall meditate in it day and night, that you may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at is written in it. For then you will make your way prosperous, and then you will have good success. 9 Have I not commanded you?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do not be afraid, nor be dismayed, for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wherever you go.” (Joshua 1:1-9, New King James Version)

QT Bread: On Shoulders Of Giants

What I’ve observed and What I am feeling:

하나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두번째 리더로 세우면서, 강력하게 약속하시고 말씀하시는 부분이다. 특히 8절은 참 유명한 말씀이다. “이 책의 율법을 네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고, 낮과 밤으로 그것을 묵상하여서 기록한 모든것대로 따라 지키어라. 그리하면, 네가 번영하고 성공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다. 그 번영과 성공 뒤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 함께 하시는 이유는 이미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고 마음에 흡족한 믿음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제 Tweeter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부하, 사랑받는 부하라 는 글을 보면서 또 다른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 글은 직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부부에서의 관계, 사회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에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긍정적인 시각으로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인 것 같다. 게으르고, 부정적이고, 매사에 비판과 비난을 입에 다는 사람은 이미 잠언에도 나와 있지만, 그 인생이 망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기 위해, 좀 더 부지런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민감하게 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