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18일째: Experiencing Life Together

크리스찬의 Fellowship에 대해서 오늘 설명하고 있네요. Christian Fellowship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요약하면, Authenticity (진실성/진정성), Mutuality (상호성), Sympathy (동질성), Mercy (은혜/자비)가 있다고 합니다.

흔히, Fellowship 이라고 하면, 그저 교회에서 모여서 밥을 먹거나 Refreshment 등을 먹으면서 서로 간단하게 얘기하는 정도로만 쓰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오늘 이 부분에서 Fellowship에 대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Fellowship을 하면서, 마치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행하고 사는 듯, 혹은 자신의 삶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는 듯,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스크를 쓰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Fellowship은 Authenticity가 있다고 합니다. 서로의 상처에 대해서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실패에 대해서 고백하고, 의심을 숨기지 않으며, 공포와 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Fellowship에서는 정직과 겸손대신에 있는 척을 하고, 역할놀이를 하며, 정치적이고, 표면적인 친절함은 있지만 얕은 대화정도가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것은 죽은 Fellowship 이라고 말하네요.

저도 그런 Authenticity가 있는 Fellowship을 가지고 싶습니다. 대학생때에 가졌었던 그 Fellowship을 사회에 나와서는 좀처럼 찾기가 힘드네요.

오늘 있었던 또 다른 교훈중의 하나는 은혜와 자비에 대해서 입니다. 이 은혜와 자비를 베풀기가 꺼려지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용서와 신뢰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용서는 과거를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이고, 신뢰는 반드시 미래의 행동과 같이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용서는 반드시 그 즉시 해야 하지만, 신뢰는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만일 누군가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 있다면, 용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즉시 해야 합니다만, 신뢰를 바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주는 사람이 계속해서 상처를 주도록 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들이 시간을 통해서 변화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Fellowship에 대해서 계속해서 다음 Chapter에서 다룬다고 하니, 기대가 되네요.

목적이 이끄는 삶: 17일째: A Place to Belong

오늘은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하고, Relationship이 있다면, 그 실천의 대상은 지역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교회 봉사가 너무 많아. 교회에서 뭐가 그렇게 하는게 많은지. 주말에 가족들이랑 어디 놀러가고 싶어도 못가겠어. 주중에도 왜 그리 모임이 많은거야? 꼭 교회에 봉사해야해? 그냥 일요일에 교회가서 좋은 말씀 듣고, 그냥 가족들이랑 나머지 시간에 놀고 하면 뭐가 잘못이야?

저도 너무 많은 시간을 교회에 쏟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부정적인 입장이긴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아무 봉사를 하지 않고 Dry하게 Attending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책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그 몸을 지탱하고 있고, 어느 몸하나 잘못되면, 그 몸 전체가 아픈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잘 지탱하려면, 서로서로가 commit 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완벽하거나 이상적인 교회는 세상에 눈 씻고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성실하고, 착하고, 선하고, 예의 바르고, 사람들을 잘 챙겨주고, 친절하고, 그런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는 “도”를 쫓아가려고 부지런히 삶에서 연습하고 다가가는 사람들을 Christian 이라고 부릅니다만, 꼭 그런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책이나 그런것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죄를 가진 우리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commit 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서로 부족하고 타락된 죄성을 가진 우리 서로서로가 “사랑” 으로 용서하고 가르치고 알려주고 등등으로 서로를 세워나가면서 서로에게 commit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석만하는 Attender와 교회의 몸의 지체인 Member 와의 차이는 그 commitment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Sadly, many Christians use the church but don’t love it

어떤 사람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혹은 아이들때문에, 어떤 사람은 배우자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사업을 위해서 등등으로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이용”을 할 수는 있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 교회를 이용하려하지 말고, 교회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의 영적 지체인 형제/자매들을 잘 섬기고 Contribute 할 수 있도록 늘 약한 저를 성령으로 강하게 하소서.

목적이 이끄는 삶: 16일째: What Matters Most

Life minus love equals zero.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위의 부분이 다가 왔네요. 인생-사랑=0. 🙂 즉, 인생=사랑 이라는 얘기지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인생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0라는 얘기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도 바울이 썼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아무리 큰 믿음으로 산을 두세개 옮기고, 아무리 큰 사역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주님 앞에서 꽝이라는 얘기지요. 🙂

이 사랑이 참 말은 쉽고, 친근하고, 무엇인지는 잘 알겠는데,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네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책은 정말 크게 도전하네요.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주여, 사랑하게 하옵소서. 내게 보여주시고 부어주시는 그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약한 저를 도우소서.

목적이 이끄는 삶: 15일째: Formed for God’s Family

오늘의 주제는 주안의 한가족인 듯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그렇게 생각한 주안의 한가족보다 더 강렬하게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네요. 피를 섞은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를 섞은 가족은 지상에서 잠깐이지만, 영적인 가족은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족이라하면, 크리스챤들과의 코이노니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싱글일때는 학교 CCC 에서 사랑방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순장님/간사님들과 뒹굴면서 지냈기때문에 그때는 그 친구들과 그 인연들이 소중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싱글을 넘어서 더블이 되고 트리플이 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 시작하고 헤어지고 사회에 나오면서 많이 떨어지게 되면서 뜸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되서든지, 현재의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제 자매들을 내가 과연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어쩌면, 과거 교회사람들이나 사람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모습도 보았었던 영향이 있을 수 있고, 사람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 영적인 형제/자매를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오늘의 도전말씀은 지금으로는 참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요.

물론, Ideal 하게는 저도 동의하는 statement입니다. 그러나 실천하기에는 아직은 제가 예수님의 수준까지 가기는 턱없이 부족함을 여전히 느끼고 삽니다.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이 주제가 큰 카테고리안에 있기때문에 계속 나올 주제 같네요.

목적이 이끄는 삶: 13일째: Worship That Pleases God

계속해서 Worship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내용에서 제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는 일맥상통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주목되는 말씀은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입니다. 몸을 제사로 드리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Physically 몸을 태워서 제삿밥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 성경 전반적으로 볼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Physical 한 제사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언제나 마음인데 어떻게 몸을 제사로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음이 몸과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있잖아. 내가 가지 않아도 마음만은 있다는 것을 기억해줘. 정말 그럴까요? 몸이 없다면 사실 마음이 있을 수 없지요.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떤 일이나 행사나 어떤 event가 있을때, 몸이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정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요즘은 Conference Call 등으로 Remotely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것 역시 몸은 그곳에 집중하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요.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그런 말씀이라고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내 영혼과 마음이 있다는 것.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내 몸이 하나님을 섬기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말로만 섬긴다고 하는 것은 위선자이고, 하나님께서 무척 싫어 하시는 것이지요. 말로는 정직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하면서, 실제 행동이나 그늘진 곳에서의 행동이 다르다면, 그것은 위선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얘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