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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써 둔 나의 유서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이같은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유서에 대해서는 무감각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들이 없는 편이다. 미국 사람들은 평소에 젊은이들도 관습적으로 유서를 써 놓는다. 미국의 교포 사회에서는 유서 쓰는 일에 익숙지 않아, 유서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재산 처리가 힘들게 되는 경우를 가끔 보아 왔다.
나도 1953년도에 미국엘 갔다 와서는 ‘유서는 젊고 건강한 때라 하더라도 미리 써 놓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적미적 미루어 오다가, 80에 들어선 해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뉴욕에서 유서를 썼다. 좋고 옳은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서두는 내 성향인데도, 유서에 한해서만은 오랜 한국의 습관과 영향 탓인지 예외가 되고 말았다. 나는 내 한글 유서가 미국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영문 서식에 맞추어 정리를 해 달라고 뉴욕에 있는 정진우 변호사에게 착수금 150달러를 지불하고 맡겼다. 그는 무척 색다른 유서를 보게 되었다면서 보증인 두 사람을 정해 달라는데, 아직 보증인을 정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유서라고 하면 대개는 죽음 다음의 재산 처리에 관한 분배 문제를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나는 재산에 관한 분배 문제는 별로 없고, 내가 죽음을 맞을 시간에서 장례 절차에 이르기까지의 문제들을 거론하였다. 내 유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생명이 위독한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동거 가족 또는 보호인은 다른 가족과 친척, 동무들에게 위독 사실을 일절 알리지 말고, 의사의 지시에만 순종할 것.
둘째, 만일 죽더라도 누구에게도 일절 알리지 말고, 장례식이나 추도식 같은 것을 일절 하지 말고, 아래 적은 순서로 가능한 방법을 택하여, 시체를 처리할 것,
1) 시체 중에는 조직 또는 장기를, 다른 환자의 치료에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척출한 후, 나머지 시체는 병리학 또는 해부학 교실에서 쓸 수 있도록 의과 대학에 제공할 것.
2) 위와 같이 할 수 없을 때는 죽은 뒤 24시간 이내에 화장 또는 수장을 한다. 만약 법적으로 화장 또는 수장이 불가능할 때에는 가장 가까운 공동묘지에 매장한다. 단, 매장할 때에는 새옷으로 갈아 입히지 말고, 입었던 옷 그대로 값싼 널(관)에 넣어 최소 면적의 땅에 매장한다. 주검은 현장에 서 100킬로미터 밖으로 운반을 못한다. 현 거주지로부터 100킬로미터 밖에서 사망하였을 때는 가급적 현지에서 위의 방법으로 처리한다. 여행 도중 바다나 강물에 익사하였을 때는 수장으로 삼고, 시체를 찾아내지 말 것,
3) 죽은 지 1개월 후에 가족, 친척, 친구에게 사망 사실을 점차 알릴 것. 만일 매장이 되었을 경우에는 화장한 것과 같은 경우로 알고, 누구에게나 묘지의 소재지를 알리지 말 것. 화장을 하였을 때, 남은 재를 몽땅 버리고, 조금이라도 어떤 곳에 남겨 두지 말 것.
셋째, 죽은 뒤, 내 유형 무형의 재산이 있을 경우는 신체 장애자들, 특히 앞 못보는 장님들의 복지 사업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가족과 내가 법적으로 지명한 집행인과 협의해서 처분할 것.
나는 위와 같은 유서의 내용을 미리 자식들에게 알리고 가까운 친지에게도 공개를 했다. 그랬더니 자식들 가운데에는 반론을 펴는 애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고 불우한 남을 위해 유용하게 쓰고 간다는 평소의 내 지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재산 문제가 일체 생략된 유서란 점에 대해서는 별반 놀라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애들은 대체로 이런 점에 불만이라고 털어놓았다. 눈이나, 심장이나 신장 따위의 장기를 다른 생명을 위해 기증한다는 것은 훌륭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위급한 상태에 빠졌을 때나, 죽었을 때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에게도 일체 알리지 말라고 적어 놓은 것은 너무하다는 것이며, 묏자리를 잡는 경우라 하더라도 일체 남에게 묘지의 위치 등은 가르쳐 주지 말라는 것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가 죽은 뒤 나의 시체 처리 같은 문제로 가족들이 먼 고국에서 와서 시체를 한국으로 옮겨가는, 번거로운 짓을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이같은 허례에 속하는 장례로 낭비를 일절 하지 말라는 뜻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내 진의는 모르고 오히려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이 유서는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어 가지고 살 때에 써 놓은 것인데, 1989년 한국에서 영주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내용이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혼자서 이승을 하직할 것이고, 빈손으로 갈 사람인 것이다. 살아 있는 순간까지는 열심히 내 정신과 몸을 다하여 남에게 소용될 사람으로 살 것이며, 일단 하느님의 부르심 받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먼지만한 미련도 남기지 않고 떠나고 싶다는 것뿐이다. 죽은 후에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겨 놓고 싶지 않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훌쩍 아주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친지는 후손들이나 후세인들에게 교육적인 뜻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묘지는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후진들에게 교육적인 업적을 남길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업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데 소비할 시간과 돈이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과 돈을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책을 만들어 보급하여 읽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가 몇 대조 공병우 할아버지의 무덤이다.”
“우리 나라에서 속도 빠른 고성능 한글 타자기를 최초로 발명한 공병우 박사의 묘지다.”
이같은 공시용이 되기 위해 무덤을 꾸미고 묘비를 세운다는 것은 아무리 교육적이란 말이 붙어도 나는 그리 달갑지 않다. 이런 것을 허례허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쓸 돈이 있으면 차라리 나에 관한 책을 만들어 내 뜻을 널리 펴 주기 바란다. 그것이 후손들에게 보다 더욱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서를 만들 때 나는 이렇다 할 종교적인 생각은 곁들이지 않고 만들었다. 이제 나는 천주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때여서 그곳에서 가르치고 있는 뜻을 새겨 보게도 되었다.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나는 완전 무로 돌아가고 싶어 화장, 수장 등을 바란 사람이다.
나는 천주교 입교를 할만큼 교리를 열심히 배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기본이 되는 신조 곧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늘 계시다는 점, 사람이 죽은 뒤에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점만은 믿고 있다.
내가 죽은 뒤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판정을 받게 될 것인가를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사는 동안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하느님 뜻에 맞게 잘 사는 것이 되는 건지가 두려울 뿐이다.
나는 조상들이 허례허식에 소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서 꼭 할 일은 못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자신이 먼저 이런 낭비의 관습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유서를 작성한 것이다.
호화로운 관을 사용하거나,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장례를 치르거나, 막대한 돈을 들여 커다란 비석을 세우거나, 공동 묘지를 피하거나 하는 따위의 허례허식과 낭비를 나는 무척 싫어한다는 점을 자식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람의 목숨이란 오직 하느님 손에 달린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오늘까지 삶을 허락해 주시는 까닭은 나에게 맡겨진 일을 조금 더 하고 떠나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아직도 미진한 한글 기계화의 일과 장님들의 재활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푹 좀 쉬다가 여생을 마치는 게 어때요?”
하고 권하는 친구도 있다.
진정으로 푹 쉬는 날은 지금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있을 뿐이다. 그 때 가서야 비로소 실컷 푹 쉬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