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큰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상을 당하셔서 한국에 1주일을 머물렀습니다. 입관하고 발인하고, 삼우제까지 지내고 (큰집은 무교이어서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잠깐 틈이 나서, 교보문고에 들려 몇가지 책을 샀는데, 이번에 좀 재미있는 책을 하나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뒤통수의 심리학 (The Confidence Game)” 입니다.
아직 끝까지 읽지는 않았으나, 책 내용은 우리가 어떻게 사기꾼들에게 속고, 어떻게 사기꾼들은 사기를 치는가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인데,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부분중에 다음 두 부분이 참 공감이 됩니다.
- 판단 기준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사기꾼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에 호소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바로 분위기 조성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욕구와 두려움, 외로움, 심지어 신체적 괴로움까지 이용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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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감정이 실제로 이성적 사고보다 훨씬 더 강한 확신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과정에 논리와 이성은 배제돼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내가 어떤 A라는 사람과 관계가 좋고, 그 A와 좋은 추억과 감정이 있다면, 제 3자가 볼때에 A가 나쁜 사람인 것이 보이고, 그 A의 나쁜점을 얘기해 줘도, 절대로 나는 A를 나쁘게 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얘기하는 제 3자가 나쁜 사람이지요. 심지어 증거를 들이 내밀어도, 이미 Bias 된 사람은 그게 도데체 왜 나쁘냐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람이 심지어 나이트에 가서 윈나잇으로 다른 이성과 잠자리를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이성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럴수도 있지.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거 아냐?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했잖아, 그럼 한번 기회를 줘야지. 더 나아가 측은 지심까지 가져 갑니다. 그 사람이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지요. 이 사람에게 논리와 이성은 동작하지 않습니다. A라는 사람과의 감정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가끔 뉴스에 똑똑한 여성이, 혹은 똑똑한 남성이 결혼 사기로 몇억씩 날리는 기사가 날때가 있습니다. 기사만 보면, 도데체 왜 사기를 당한거야? 라고 제3자는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런 감정의 스토리가 있었기때문에, 상대를 믿기에, 그 전에 그 상대가 자기를 희생하면서 본인에게 감동을 주었던 일이 있었기에, 그 까짓 몇억은 그 사람을 위해 주는 것이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다, 상대의 본심이 먼 훗날 나타나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식으면서, 진짜 논리와 이성이 찾아올때는 이미 게임은 끝나도 한참 후에 끝난 뒤의 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똑똑한 사람일수록 사기를 더 잘 당한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은 당신을 속여 이용해 먹으려고 접근하지 않는다. 우리가 거짓말을 눈치채는 능력이 형편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편을 신뢰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뛰어난 거짓말 간파 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것이 진화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더 이롭다. 잘 믿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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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심리는 득이 됐으면 됐지 나쁠 것은 없어 보인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대인 신뢰가 높을수록 신체적 건강과 정서적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국민들의 타인 신뢰도가 높은 나라들은 경제성장이 빠르고, 공공기관도 더 건실한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잘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 사업을 시작하거나 자원봉사를 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남을 더 신뢰한다.
다시말해,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모습의 세상”은 바로 사기꾼들이 목표물에 접근할 때 노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를 사기꾼의 책략에 쉽게 넘어가게 만드는 취약점이 될 수도 있다니. 우리는 본성적으로 남을 잘 믿는다.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맞이 한다. 그리고 동시에 타인을 잘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게임의 이상적인 일원, 즉 사기꾼의 완벽한 표적인 된다.
가끔 예전에 그렇게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고, 박사과정까지 거친 그 사람이 왜 사이비 이단 종교에 빠져서 재산을 날리고, 인생을 망치게 되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검증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았지요.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습니다. 심리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똑똑한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 똑똑한 사람이 갖는 가장 취약점인 믿음과 신뢰를 사기꾼들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위에서 언급한 “감정” 스토리를 이 똑똑한 사람과 지속적으로 쌓아 왔다면, 사이비 이단이라 할 지라도 사기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쌓아 올리는 것은 옳은 친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기꾼들도 그렇게 옵니다. 처음부터 사기꾼인것을 알았다면, 그 누구도 사기를 당하지 않겠지요. 대부분의 사기꾼은 신뢰와 관계를 가지고 오고, 이것은 나중에 이중 삼중으로 물질적 손해 외에 정식적인 충격과 상처를 덤으로 주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교회/학교/직장에서 몇번 뒤통수 맞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경험은 저에게 쓰리고 쓰린 트라우마를 남겨주었지요.
이 책머리에 작가인 마리아 코니코바가 Acknowledge에서 쓴 세가지를 마음과 피부로 새겨두면, 아마 사기 당할 일이 많이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삶이란 공정하지 않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규칙에서 예외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