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The Sarah Connor Chronicles) Season 2: Episode 6: The Tower Is Tall But the Fall Is Short

이 에피소드는 의미심장한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과 기계의 진화입니다.

1. 교육

사실 터미네이터 전반에 걸쳐 기본적인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라코너가 존을 기계에 맞서는 리더로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갸날펐던 사라코너가 터미네이터1에서 죽고나서부터 터미네이터2에서 등장한 사라코너는 정신병자 취급에 존을 강하게 키우고자하는 바램으로 남들과는 다른 교육을 했습니다. 터미네이터3에서도 역시 불안한 존의 모습입니다.

터미네이터, 사라코너 크로니클에서는 자세하게 어떻게 사라코너가 존을 키우고 지켜나가는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특별히 이번 에피소드는 그 교육에 있어서 존과 사라코너를 꼬집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고 성숙하는데는 부모와 사회의 교육수준이 그 아이의 성장수준을 결정하는데, 존의 경우에는 보통 엄마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정상적인 교육보다는 기계와 싸워야하는 특별한 사명감으로 아이에게 강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터미네이터2에서 나온 존의 살짝 삐뚤어져 있는 모습과 이 TV Show에서 등장하고 있는 존의 사춘기의 반항의 모습속에서 그 교육이 그렇게 바른 것이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똑똑하게 다시 여과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교육이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깨닫게 합니다. 사랑과 격려, 그리고 바른 교육이 있어야 하지만, 존의 경우와 같이, 어떤 목적만을 위해 아이를 다그치고 이끌어 가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부모님들이 또한 들어야 할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돈을 잘 벌기 위한 성공만을 위해 좋은 대학을 목표로 어릴때부터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아이가 피곤하도록 학원과 지식을 집어 넣는 행위는 흡사 사라코너의 목적을 위해 아이를 다그치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결국은 아이는 자신의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채, 자라게 되고, 이기적이 되며, 극단적일 수도 있고, 또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하려는 교만하고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싫어하는것이라면, 고집스럽게 상대를 공격하고 괴롭히게 되고, 그 성향은 나이가 먹어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가 되어 버립니다. 비록 그 아이가 서울대를 가고 돈도 잘 번다 할 지라도 말이지요.

어릴때의 그런 지식교육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은 그 외에 필요한 인성과 사랑이 쏟아부어져야 할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그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교육은 올바르지 않음을 이 에피소드에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마지막 장면에서 사라코너가 스스로 상담을 청하고 찾아 간 것은,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희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존이 리더로 잘 이끌게 되는 것이라면, 존은 그런 잘못된 교육으로 삐뚤어진 인간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된 모습이어야 하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사라코너는 무언가 깨달은 것 같습니다. 강해진 군사와 같은 모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랑과 바른 교육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2. 기계의 진화

기존의 사람들의 생각에서는 기계가 감정을 가지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 또 놀라운 것은 그 전제를 무시하고, 기계가 유머를 가지고, 감정도 가지는 것으로 기계가 진화된다는 것입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작가가 부여하고 싶었던 부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TV Show에서는 지속적으로 기계가 감정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어떤 희망사항을 표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일 기계가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그 기계를 어떻게 대해야 할 까요.

인간과 동등하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계를 너무나 싫어하는 사라코너와 기존의 사람들에게 있어, 존은 또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접근 하는 듯 합니다.

기계의 친화적이고 같은 권리로써 호소하고 있는 최초의 픽션은 아마 데츠카 오사무의 아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기계의 AI (Artificial Intelegence)의 진화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적 문제를 같이 끌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계의 감정화 이입에 대해서는 아마 터미네이터 시리즈중에서 이 TV Show가 최초로 다루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것을 그려나가는지가 또한 메인 포커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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