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보다 예의가 먼저. 상대가 악인이어도 사람으로의 예의를 지키면서, 옳고 그름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 필요. 바른 이야기를 기분 나쁘지 않게 얘기하는 것이 필요. – 김동호 목사님의 Faithbook 중에서… #
- 항상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 발견하는 이유는 뭘까. 항상 시험 끝나고 나서, 뭘 틀렸는지 생각이 나는 이유는 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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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읽다가, 발견(?). 노아 홍수 이전에는 여호와의 율법이 존재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아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땅이 존재하는 한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음으로 그 댓가를 치룰것” 이라는 최초의 율법을 만드시고 사람들에게 공표하시는 것 같네요.
노아 홍수 이전에, 사람들의 포악함이 극에 달했다고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 포악함과 잔인함에 어떤 법으로 다스리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구 전체에 그 포악함, 잔인함이 가득했었고,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의인이었다고 하는 기록은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 이전에 어떤 율법이나 법률이 있어서 사람들을 다스리거나 한 것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창세이후에 법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었는데, 인간들이 “악”을 알기 시작하고, “악”을 행하기 시작하면서, 그 행위의 악함이 극에 달했던 것 같습니다. 율법이라는 법이 이미 악해진 세상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물로 노아와 몇몇의 생명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생명을 없애고, 새롭게 노아와 함께 하는 세상에서는 율법을 주고 시작하시면서, 다스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태생이 이렇다면, 신약에 바울이 얘기한 것처럼 결코 율법으로 우리를 깨끗게 하거나 구원을 받을 수는 없겠지요. 즉, 법을 지켜서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정말로, 법은 죄가 무엇인지 드러내게 하는 역할일뿐, 법을 지켰다고, 내가 깨끗하거나 죄인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얘기가 되겠네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바르게 서는 것이 먼저 인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늘 민감하게 귀를 귀울이고, 그분의 뜻이 무엇일까 먼저 생각하고, 또 그 뜻을 바르게 알게 되기를 항상 기도해봅니다.
(위의 내용이 정말로 신학적으로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성경을 읽다가 그런 느낌이 들어, 여기에 이렇게 주저리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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