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F-8 NFD

emacs를 사용하다가, 한글 표현이 다른 것은 잘 되는데, shell에서만은 유독 한글이 풀어서 나와서 불편했었습니다. 그런데, eshell 에서는 한글 조합이 잘 되는 것입니다. 두 Buffer를 검사했었더니, 모두 utf-8-unix를 쓰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조합이 어떻게 안되는지 보여줍니다.

decomposedKorean-Emacs
한글 조합이 제대로 되어 지지 않은 emacs shell 의 모습
composedKorean-Emacs
한글 조합이 제대로 되어 있는 emacs eshell 의 모습

여러가지로 조사를 해 본 결과, file-name-coding-system 이 utf-8-nfd 일 경우에, eshell은 한글 표현이 제대로 되었습니다. file-name-coding-system이 utf-8-unix로 바뀔 경우, eshell도 한글 조합이 M-x shell 과 같이 풀어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더 조사를 해보니, 이것은 현재 Carbon Emacs ( GNU Emacs 24.5.1 (x86_64-apple-darwin13.4.0, NS apple-appkit-1265.21) of 2015-04-10 on builder10-9.porkrind.org ) 가 UTF-8의 NFC까지 지원하고, NFD를 지원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http://www.emacswiki.org/emacs/CarbonEmacsPackage#toc23 )

Emcas Wiki에 따르면, NFC ( Normalization Form C )는 diacritical marks ( 예: ü )등이 두개로 나누어서 표시된다는 것입니다. 즉, ü 이 u” 와 같이 된다는 것이지요. NFD ( Normalization Form D )에 와서야, decomposed 되어 있는 character가 한개의 composed character로 표현이 됩니다. 즉 ü 가 제대로 잘 보이는 것이지요. 이 문제로 다음과 같은 language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 All characters containing diacritical marks (accents, umlauts, tilde, etc.)
  • Japanese Kana characters with Dakuten/Handakuten signs
  • Korean Hangul characters

한글도 조합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조합된 한글이 표현이 안되는 것이라는 것으로 저는 이해를 했습니다.

위의 사이트는 위키에서 참고한 문헌입니다.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하여 해결을 했습니다.

(prefer-coding-system 'utf-8-nfd)

다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해결 할 수도 있습니다.

(setq process-coding-system-alist (cons '("bash" . (utf-8-nfd . utf-8-nfd)) process-coding-system-alist))

또는

(setq file-name-coding-system 'utf-8-nfd)

 

마음의 지하실

지금, 반경 10M 이내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l 상상이 시작되는 곳 Daum 웹툰

Source: 좋아하면 울리는 21화 | Daum 만화속세상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약하고, 또 비겁하여, 어떤 사람의 약점이 다 드러나는 비밀을 알게 되었을때, 그것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여 털어 놓은 사람의 인생에 큰 짐이 되는 경우가 있지요.

요즘 웹툰 만화가 왠만한 영화 / 드라마보다 더 나을때도 있네요. :)

세월호 그리고 목사님들

 

목사들의 참회록인가?

교회들에게 따끔하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말하는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초대 교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교회 주교로 알려져 있고, 심지어 바울을 지도하고, 바울은 야고보를  매우 존경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15:3-8, 야고보는 누구인가? ) 그는 야고보서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야고보서 1:27 ) 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도 행동하는 분이셨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매우 중요시 여기던, 사회 지도자층이자, 기득권자들의 부정과 위선적인 모습을 강하게 비난하고 비판하고, 오직 그는 바리새인들 혹은 사두개파들의 질시와 멸시의 대상인 세리, 창녀,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복음 전파하셨다.

그것을 알고 계신 목사님들이, 그것도 현 시대에서 많은 부분에 있어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하는 분들이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고, 부정과 위선적인 정치인들에 맞서서 당당하게 옳은 얘기를 용기있게 하지 못하는 분이라는 사실은 상당한 실망감을 준다.

그들의 말은 정말 청산유수와 같이 아름답고, 그 말씀가운데에 은혜를 많이 받는다. 은혜 받는 사람에게 더 큰 은혜가 있을 지어다. ( 아멘 )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은 입술로만 아름다운 말만 할 뿐, 본인들이 행동하는데에는 무척이나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은혜로운 말씀들이 힘을 잃게 되는 것 같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직접 비난하시고 비판하신 그 말만 번지르르한 바리새인과 동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월호를 설교에 언급하는 것이 이제는 정치적으로, 교회내의 보수파 장로나 보수층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고, 많은 목사들이 그것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금식보다 교회의 분열이나 교회 어른들에게 밉상을 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과연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옳을까?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 아모스 5:7-24 )

세월호의 참사와 그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내가 무언가 많이 할 수 없는 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미국에서, 직장속에 파묻혀, 매일 매일을 생계에 허덕이는 게으름으로, 나는 세월호에 관련되어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시간 하나 내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인가 라는 질문에, 나 자신도 사실은 너무나 부끄럽다.

행동하자. 그리고, 실천하자. 그리고, 두려워 말자.

오해와 진실

1. 광고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흔한 오해와 그 뒤에 숨겨진 진실.

2. 다음은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이야기 하나.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동료 세 명이 한 집에서 살았는데,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를 두었읍니다.
가정부는 청소와 요리를 해주었고, 그녀가 해주는 일은 마음에 쏙 들었다. 한 가지만 빼고…

그 동료들은 집에 있는 술병의술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걸 눈치 채고는 가정부가 몰래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남은 술이 얼마나 되는지를 술병에다 표시를 해서 술이 줄어드는지를 확인했는데 분명히 술은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에 그들은 골프 모임을 마치고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자기 전에 한잔 더 할 생각을 하다가 술병에서 술이 자꾸 줄어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취기가 좀 돈 상태라 그들은 가정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술이 남은 병 안에 오줌을 눠서 채워 넣었다. 그걸 선반 위에 도로 갖다 놓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았다. 며칠이 지났는데 술병 속의 술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들은 가정부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정부에게 자기들 술을 마셨냐고 물으니까, 가정부가 대답했다.

“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음식 만들 때 썼는데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풀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편견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나쁜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오고 말 것입니다.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주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서로 믿고 편하게 터놓고 진실하게 대화하면 아주 쉬운 일들을 우리는 어렵게 살고 있는건 아닌지….

3. 직접 대화해 보지 않고는, 직접 앞뒤전후 사정 모두 들어 보지 않고는, 우리는 쉽게 오해하고,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하나의 모습은 그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4.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야고보서 1:19-27 )